April 8, 2021
By Kuni Shim
Drowning, 112 x 145 cm, mixed media on paper, 2018
이 작품 Drowning (112 x 145cm, mixed media on paper, 2018 ) 같은 경우는 결과물에서 혼돈이 질서가 되는 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 그림입니다. 동시에 사람의 감정적 요소들도 텍스처 표면에 가장 잘 나타났기에 개인적으로 아끼는 그림입니다.
작품을 진행하는 방향과 함께 더 설명을 드린다면, 먼저 저는 무질서한 하나의 물감 덩어리를 캔버스에 올립니다. 아름다운 하얀 빈 공간 위에 물감을 올려 하얀 캔버스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저는 이 물감의 터치를 ‘감정의 형상화 작업’으로 표현하는데요. 감정의 형상화 작업이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결로 이루어진 사람의 감정을, 농축되고 반복되지 않는 패턴을 갖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이 형상화 작업은 사람의 성격을 시각화 한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된 감정의 덩어리는 어떠한 특정 형태도 없는 혼란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제 그 위에 또 다른 혼란의 형태들을 쌓아가며 혼란을 지속합니다. 그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굳어가는 감정을 말리고 뜯고 흘려내리게 하고 때론 중력을 이기게 하다 보면 그 무차별한 혼란 속에서 서서히 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패턴에게서 저는 사람의 형상을 발견합니다. 사람은 무질서하게 반복된 패턴 속에서 어떠한 형태를 찾아내는 능력 (팔레이돌리아)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관람자는 어떠한 형태의 흐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찾아내는 과정이 안구를 움직이게 하며 머리는 기억을 재정비하게 될 것입니다 ( EMDR 트라우마 치료기법에서 착안 ). 이 과정은 관람자가 직접 그림과 자기 자신을 대면하여 제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예술적 제작자 입장에서 조금 더 설명드리자면 기본적으로 이 그림은 감정의 물질로 뒤덮인 사람의 형태가 서서히 분해되는 과정의 모습을 프레임에 담은 것입니다. 불안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경험들이 온몸을 감싼 채로 고통받으며 끊임없이 저항하다 지친 듯한 인체의 모습은 체념을 뜻합니다. 하지만 체념함과 동시에 그 감정 물질들이 서서히 물속에 흩어지는 잉크처럼 분해되고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는 발버둥을 뜻하지만 동시에 희망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Remember Phineas Gage, 48 x 65 cm, charcoal on paper, 2020
Remember Sigrid Hjertén, 48 x 65 cm, charcoal and candle wax on paper, 2020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는 누구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의 끊임없는 아이디어들을 사랑합니다.
가장 감정에 매료되는 작가의 작품은 마크로스코, 프란시스 베이컨, 자코메티, 케테 콜비츠입니다. 그들의 작품들의 깊이는 디지털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빛을 잘 느낄 수 있는 작가는 모네, 그의 작품들에서는 정말 빛이 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람의 인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작가는 에곤쉴레, 그의 그림에 녹아있는 해부학적 지식은 완벽합니다.
만약 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길을 가셨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화가는 제 인생에서 시기의 문제이지만 언젠가 꼭 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지만 만약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고 있다면 저는 신발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신발 디자인은 제 중학교 때부터의 꿈이며 여전히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신발 위에 물감을 칠하고 분해하고 스케치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노트북엔 항상 신발 아이디어들을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스타일리시한 신발부터 기능적인 신발까지. 이러한 점들 때문에 앞에서의 질문처럼 다빈치를 가장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5000장이 넘는 스케치들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실현시키지 못했더라도 그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Doyle. San Francisco CA, 2017
보통 작품에 사용되는 재료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재료들만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품에는 주로 콩테, 목탄, 오일 파스텔, 오일, 아크릴, 미디엄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사용합니다. 때론 물감이 아니라 바크, 나뭇가지, 돌가루, 캔들 왁스 등 자연물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재료가 주는 그들만의 질감과 반사도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연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질감에 흥미가 있으며 이를 작품에 재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재료에 대한 흥미와 공부를 위해 이것저것 많이 구입 해놓고 작품을 진행할 때 즉흥적으로 사용하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터운 질감을 사용하는 이유는 빛과 환경에 작품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두터운 질감은 상당 부분 빛에 의존하여 그림자를 만들어주고 이는 제 작품이 공간 속에 조화를 이루게 해줍니다. 빛에 대한 의존성이 있는 작품은 사람의 나약한 면과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면은 빛으로 인해 명확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제 작품은 공간이 주는 빛의 조도, 각도에 따라 변화하고, 자연광에서는 시간마다 매일매일 그림이 다르게 살아움직입니다.
이렇듯 입체가 주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에서 더 보기 좋은 작품을 그리기보다 직접 전시장에 오셔서 그날의 기분, 그날의 날씨, 공간, 습도, 음악, 향기, 공간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전시하고 싶어서입니다.
주로 흑백작품을 많이 그리셨는데, 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먹구름이 끼어 모든 세상을 낮은 채도로 만들어버리면 사람은 속마음을 열어 생각에 잠기고 깊이 숨겨놓았던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듣는 음악에 더욱 심취하는 것처럼, 평소 밝은 이미지를 유지하느라 돌보지 못 한 우리 인간들의 무의식은 자신의 색을 투영할 수 있는 무채색에 마음을 연다고 생각해요. 흑백이라는 것은 빛만 있는 세상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의 색이 아니라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색과 시선을 더욱 신경 쓰기에 색이 주는 감정적 요소들을 지금은 배제하였습니다.
흑백은 간접적입니다. 그리고 제 그림의 하얗고 검은 텍스처는 의존적입니다. 그렇기에 관람자의 시선을 필요로 합니다. 제 전시에 오시면 많은 관람자들이 소위 ‘멍 때리며’ 그림을 관람하십니다. 그렇게 교감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흑백으로 작업하고 있는 제 마음이 담긴 작업 방식입니다.
The Angel, 100 x 81 cm, mixed media on paper, 2014
‘모두의 드로잉’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책을 출간할 때 겪은 어려운 점이나 작품 활동 할 때와는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요?
모두의 드로잉은 제가 평소 생각하던 드로잉의 기초에 대한 책인데요. 책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평소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간략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고 또 시간도 많이 걸렸는데요. 출판사 대표님께서 이해해 주셔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접근하는 개인적 태도에 변화가 생긴 적이 있나요?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히 대상에 대한 재현, 테크닉적 호기심에 기반한 접근을 많이 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상의 재현에 충실한 작업을 할 때면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저는 예술에 대한 힘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 그 계기로 충실한 재현 그 이상을 담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처음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그 많은 날들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저는 일주일 동안 하루 18시간 동안 잠만 잔 이상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만큼 에너지를 쏟아서 그런 회복 기간이 필요한 거 같았는지 정말 끊임없이 숙면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전시 준비가 끝난 뒤 가만히 탄천에 앉아 햇빛을 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경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작품을 한다는 것은 그저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경험은 전시장에 오신 관람객분들께서 제 그림을 보고 공감하여 본인들의 가장 사적인 부분을 오픈하고 공유해 주시려 한 것입니다. 때론 반짝이는 눈물을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멍하니 두 시간 동안 그림만 바라보시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죠. 제 그림을 통해 위로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 저는 제가 하는 예술의 목적과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변화가 있었다면, 과거에 제작한 작품과 최근 완성한 작품 사이에 스타일적 차이도 있나요?
과거에는 좀 더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이 섞인 라인 드로잉에 집중하였다면 지금은 물감과 재료가 주는 고유한 특성을 활용한 그림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면적인 디지털 화면에 어울리는 그림보다 공간에 어울릴 그림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색도 조금씩 섞어가며 작품을 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Stay, 89 x 130 cm, mixed media on paper, 2017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21K에 가까운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하고 계시는데, 혹시 소셜미디어가 예술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바로 sns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근 8년간 그림을 그린 결과 서서히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셨습니다. 사실 소셜미디어가 우리나라 예술계의 메인스트림을 바꿀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소위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예술가 중 한 명으로서 경험 한 결과 소셜미디어의 진정한 장점은 바로 관람자의 입장에서의 경험입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쉽게 예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인식과 저변의 확대는 이로부터 시작될 것이며 이는 문화로서의 발전에 분명 기여할 것입니다.
예술은 인간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게 해주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대중들들이 이 예술이라는 거울을 소셜미디어라는 플랫폼을 통해 위로받고 나아가 작가와 작품을 좋아하게 되며 이를 통해 직접 전시장을 가도록 하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소셜미디어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 활동의 목적은 초심을 잃지 않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하고 싶은 작품의 깊이를 더더욱 깊게 만들고 더 많은 관람자분들이 제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위로를 받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 부분에 깊게 들어갈 수준이 제가 된다면 그 외 나머지 커리어적인 부분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아트텀스 매거진 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 합니다.
인터뷰를 흥미롭게 읽으셨다면 저를 찾아주세요. 그리고 조금 더 천천히 지켜봐 주시고 흘러가는 세월 속 제가 어떤 작품들을 남기는지 바라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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